베이징시 관광발전위원회 한글공식사이트
아이디/비번찾기

베이징관광국 공식사이트

북한사람 중국체험기 - 경산공원과 고루,종루

  • 입력 2015-01-27 08:22:08 | 조회 2114
  • 출처 CRI
목록

중국의 수도 북경,

몆천년의 력사를 자랑하는 이곳에는 관광지도 수없이 많습니다.오늘은 그중에서 경산공원과 고루,종루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경산공원)

중국 명,청조시기 황제들을 위한 놀이터였던 베이징 경산공원은 금수하를 사이에 두고 자금성북쪽성곽과 마주하고있습니다.오늘날 경산이 위치한 지역은 원고시대때 영정하의 몰길중 하나가 흐르던곳입니다.

료나라때 북해공원의 큰호수를 만들면서 파낸 훍이 쌓이고 쌓여 경산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경산의 높이는 42.6메터,산둘레는 1015메터,해발높이는 88.35메터입니다

경산지역에는 13세기중엽,원세조 쿠비라이 집권시기인 1267년부터 궁전이 들어 앉기 시작했습니다.

1421년 명나라가 수도를 베이징으로 옮기자 경산은 황제들이 활을 쏘거나 희극을 감상하고 종교행사를 진행하는 벌린 왕실전용 장소로 되였습니다.

경산은 1928년에 대외에 개방되였는데 1949년부터 오늘의 공원모습을 가지게 되였습니다.

이곳에는 화단과 잔디면적이 1100평방메터나 되며1000여그루의 소나무,잣나무와 갖가지 수많은 나무들이 설레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신공원에는 싱그런 솔내와 꽃향기가 언제나 흘러 넘치고 있습니다.

경상공원에서 보게 되는 사람들가운데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것은 로인들입니다.

(경산공원)

여기서 춤을 추는 사람들도 대다수가 늙은이들이고 운동하는 사람들도 거의가 로인들입니다.

아마 그전에 다 누리지 못한 락을 향수하고싶은 인생황혼의 마음들이 모두 여기에 모이는듯싶습니다.

늙은이도 찾아오면 젊어지고 그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경치가 장수보약이 되는 곳이 바로 경산공원입니다

그런데 여기 온다고 해서 누구나 다 오래사는것도 아닌것 같습니다.

경산공원에 있는 한 홰나무가 력사에 새겨진 경산의 비극을 전하고있습니다.

1644년 리자성이 이끈 농민봉기군이 자금성을 함락하자 도망치던 숭정황제가 바로 이 홰나무에 목을매여 죽었다고 합니다.

실지 그가 목을 맸던 나무는 1960년대에 낡은 봉건 사상과 봉건문화의 잔재로 락인찍혀 잘렸지만 후에 그와 류사한 나무를 이곳에 다시 옮겨심어 력사의 락엽에 묻힐번한 사화의 한부분을 후세에 전해줍니다

(숭정황제가 목을 맨 홰나무)

경산 동쪽켠에서 산비탈을 타고 서쪽으로 오르면 주상정,관묘정,만충정,집방정,부람정이라고 부르는 루각이 차례로 서있습니다.

이중에 황색 유리기와천정을 얹고 경산최고봉에 세워진 만춘정 루각에는 주홍색 벽의 사당이 세워져있습니다.지상에서 약 40메터 높이에 있는 만춘정 전망대에 올라서면 자금성의 전경을 한눈에 굽어 볼수 있습니다.

이곳의 5개 사당의 불상중에서 4개는 1900년 8개국련합군이 쳐들어 왔을때 략탈당했습니다.

관광객들은 여기에서 중화민족이 당한 그 수난에 대해 더 깊이 새기고있습니다. 한마디로 경산공원은 중국의 어제와 오늘이 다 어우러져 독특한 풍미를 자아내는 관광지입니다

2.고루와 종루

(고루)

고루는 베이징의 동성구 지안문외거리의 북쪽끝에 위치하고 있습니다.높이가 46.7메터,동서넓이가 56메터,남북길이가33메터입니 다.고루와 종루는 원,명,청시기에 베이징에 시간을 알려주던 기구입니다.

청조는 해가 저물기 시작해서 이튿날 동트기까지를 5개 시구로 나누었는데 19시부터 21시사이를 초경, 21시부터 23시사이를 이경, 23시부터 다음날 1시사이를 삼경, 1시부터 3시사이를 사경, 3시부터 5시사이를 오경,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2시간에 한번씩 북과 종을 쳐서 시간을 알렸습니다.원조때 고루를 제정루라고 불렀습니다.

(고루)

고루는 대체로 1층과 2층으로 이루어졌습니다.1층은 남북쪽에 각기 문이 3개, 동서쪽에 1개씩 달려있는데 남쪽 문앞에는 한쌍의 돌사자가 있습니다.

1층과 2층사이에 69개의 계단이 있는데 경사가 급해서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 아찔한 느낌과 실지 종을 치러 높이 올라가는듯한 쾌감을 줍니다

옛날에 .2층에는 가운데 큰 북을 기준으로 량쪽에 작은 북이 24개나 늘어서 있었다고 합니다.

이 큰북의 높이는 2.22메터,북가죽의 직경은 1.40메터인데 보다싶이 험하게 찢어져있습니다.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이 군도로 이 북을 찢었다고 합니다.

찢어진 북은 어제날의 상처를 지금까지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

.1900년 8국련합군이 베이징을 침공할때 고루의 문물은 파괴되였지만 고루자체는 보존되였습니다.

1923년에 고루를 명치루라고 고쳐불렀다가 1924년에 다시 제정루라고 불렀고1996년에 중국중점문물보호재로 선정되였습니다.

(종루)

여기는 고루에서 북쪽으로 100메터되는곳에 위치한 종루입니다1272년에 세워져서 종을 울리다가 전쟁으로 파괴되였던것을1420년에 재건했고 1746년 건륭황제때에야 지금의 모습을 가지게 되였습니다.

부지면적은 6000평방메터,높이가 47.95메터인종루건믈 2층에는 7.02메터높이의 동으로 민들어진 종이 있습니다.

한번 울리면 소리가 10리밖까지 울려퍼진다는 이 종은 아구리 직경만 3.4메터,무게가 63톤입니다.

(종루)

여기 종루역시 1층과 2층이 75개 계단으로 이어져있는데 들어서면 력사의 미궁속으로 들어가는 감이 듭니다.

이 종에는 감동깊은 전설이 깃들어 있습니다.당시 종을 주조할때 마지막에 불길이 약해지자 장인의 딸이 불에 뛰여들어 종이 완성되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나라의 에밀레종이 떠오릅니다.

종을 만드는 힘든 과정과 종에 깃든 장인들의 숭고한 넋이 여기에도 깃들어 있습니다

 

(종루)



베이징관광국 한글공식사이트     최종수정일: 2015-01-27 09:24:15   

목록

> 한마디

등록된 의견이 없습니다.
1
로그인 후 이용하여 주십시오
의 견
링 크 블로그나 관련링크 URL을 입력하여 주십시오
(http://포함주소)

> 관련 기사 47

맨위로

개인정보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