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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과 문화, 베이징 십찰해(什刹海)

  • 입력 2016-03-07 09:51:51 | 조회 985 | 추천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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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찰해 풍경)
 
십찰해(스차하이, 什刹海)는 베이징의 옛 모습을 가장 많이 보존하고 있는 역사 문화 관광지이다.
 
지금의 십찰해는 수면이 그렇게 넓지 않아 십여명이 탈수 있는 작은 유람선이 다닐수 있는 정도이다. 하지만 <원사(元史)>에 따르면 700년 전 이 아름다운 호수에는 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어서는 성황이 펼쳐져 크고 작은 배들이 호수를 메웠다. 그렇다면 당시 수많은 대형 선박이 들어설 수 있었던 호수가 지금은 왜 이토록 고요할까? 그동안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길래 선박이 밀물처럼 들어서던 십찰해가 지금의 작은 연못이 된것일까?
 
십찰해가 해(海) 즉 바다로 불리우게 된 것은 베이징성 수역 분포와 관련된다. 지금의 적수담(積水潭), 후해(後海), 전해(前海) 그리고 덕승문(德勝門) 밖에 있었던 태평호(太平湖)는 원래 하나로 연결된 큰 수계로 물량이 풍부했다. 전한데 의하면 원세조 쿠빌라이가 금중도(金中都)의 궁성을 포기하고 대도성(大都城)을 다시 건설하게 된 원인이 바로 십찰해의 수역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수역 중심으로 새로운 도성을 건설할 계획을 세웠다.
 
일찍 금(金)나라 때 이곳에 행궁인 대녕궁(大寧宮)이 세웠졌고 원(元)나라 건국 후 원세조 쿠빌라이는 몽골 고원에서 도읍을 금나라 도성이었던 중도성(中都城)에 옮겼다. 하지만 수원을 고려해 도성을 포기하고 동북 외곽에 위치했던 백련담(白蓮潭) 즉 지금의 십찰해 일대에 대도성을 다시 건설했다.
 
유명한 건축학자 류병충(劉秉忠)이 설계한 대도성은 그 중심부에 백련담이 있었다. 또한 금나라 대녕궁을 기반으로 백련담 남부 수역을 황성내에 두고 태액지(太液池)라 이름했다. 이것이 지금의 북해(北海)와 중해(中海)이다. 그리고 양안에 궁전과 정원을 건설해 왕조의 핵심인 궁성(宮城)을 형성했다.
 
 
 
또한 적수담, 후해와 전해 그리고 덕성문 밖에 있었던 수역을 통틀어 해자(海子)라 불렀으며 이 넓은 수역은 원나라 황실원림의 신성한 수계로 됐다. 말하자면 원나라는 바로 이 수역을 중심으로 대도성을 건설했던 것이다.
 
십찰해 "십찰(什刹)"두 글자의 유래에 관해 두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명나라때 해자 부근에 사찰이 하나 세워졌는데 그 이름이 십찰해사(什刹海寺) 였다고 한다. 하여 호수의 이름도 십찰해라 부르게 됐다.
 
다른 한가지 설도 사찰과 관련이 있다. 옛날 십찰해 부근에는 지금도 볼수 있는 화신묘(火神廟), 광화사(廣化寺) 등과 같은 사찰이나 암자, 도관이 많았다. 십(什)은 열 십이요 찰(刹)은 절 찰이라 호수 주변에 사찰이 10개 있다 하여 십찰해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떤 설이 더 정확할까?
 
일부 역사 자료에서는 십찰해 이름은 "십찰해사"에서 유래됐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그래도 두번째 설이 더 설득력이 있다는 목소리가 크다. 또한 바다 해(海)는 사찰이 많다 하여 붙여졌고 나중에 십찰해 이름을 딴 사찰이 나타난게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다.
 
하나의 지명이 나타나고 다시 전해지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과 변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가지 사건으로 인해 갑자기 생겨나는 경우가 극히 적다. 하여 여러가지 설과 추측이 있는것도 당연한 일이다.


베이징관광국 한글공식사이트     최종수정일: 2017-01-18 10:5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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