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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 첫 전등은 언제 불을 밝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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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궁궐 최초의 전등설치 이야기 - 자금성 전당 실내조명 설치에 즈음하여

원문: 고궁출판사 궁궐역사편집실 주임 王志伟
사진: 고궁소장사진 <故宫藏影> 고궁출판사 2014年8月판 중 옛 사진
번역편집: 베이징관광국 나는걷는다.。

 

지난 2016년 5월 18일, 국제박물관의 날, 고궁박물원은 중추선 상의 6개 전당에 처음으로 실내 조명을 밝혔다.

고궁박물원의 주요 전당 6곳은 모두 청나라 말기 모습으로 실내를 복원하여 전시중인 곳으로, 실내 조명이 설치됨으로 참관객에게 좀 더 선명하게 실내를 볼 수 있게 하였다.

그렇다면, 자금성에 처음으로 전기 조명이 들어온 것은 언제일까? 약 1백년전 자금성에 처음 전등이 설치되었던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 5월 18일, 자금성내 전3전(太和殿中和殿保和殿)과 후3궁(乾清宫、交泰宫、坤宁宫) 실내에 전등이 불을 밝혔다. 中新社记者 杜洋 摄

 

 

청 역사 전문가 왕도성(王道成), 양내제(杨乃济) 두 선생의 연구에 따르면, 궁궐에서 가장 일찍 전등을 달았던 건 1888년이다.

1888년(光绪14년), 해군아문(海军衙门)에서 신기영기계국 총판 은우(恩佑)를 시켜 백은 6천량으로 키에루프 양행(P. Kierulff & Co.)으로 부터 전등 일체와 발전 보일러 및 각종 물건을 구매케 하였다.

<봉진원기사부(奉宸苑记事簿)> 기록에는 "광서14년 11월 26일, 남해에 전등을 설치하고 보일러는 의란전 서담 바깥에 적당히 설치"라고 기재되어 있다. 이로서 청궁에서 처음으로 전등을 설치한 곳은 자희태후(慈禧太后)가 머무는 서원(西苑)의 침궁 의란전(仪鸾殿) 내부임을 알 수 있다.

당시에 서원으로 운송된 발전장치는 최소 20마력(약 15kw) 발전기 한 대로, 그 설치지역에 봉신원(奉宸苑) 산하의 서원 발전공소(西苑电灯公所)를 설립했다. 옹동화 선생의 1889년 1월 30일 일기 중에 "전등이 금림을 비춘다(电灯照耀于禁林)"는 표현은 당시 궁궐 전등에 관한 첫 기록이다.

 

 

△ 최초로 서양에서 전등장치를 구매한 기계국 총판 은우 恩佑。

2년 후, 청궁궐의 두번째 전등공소인 이화원 전등공소가 건립되었다. 역시 해군 아문에서 구매한 것으로, 금액은 백은 1만2천여량으로 독일에서 발전기를 사들이고, 이화원 야율초재사(耶律楚材祠) 남측에 설치하여, 악수당(乐寿堂) 등 만수산 동측 핵심건축에 전등불을 밝히게 하였다.

<이화원전등공소국간, 기계수목책 (颐和园电灯公所房间、机器数目册)> 기록에 보면, 전등공소는 기계방 68칸, 동원방 18칸, 증기발전기 3대를 보유했다. 이런 규모는 궁궐 부대시설로는 거대한 규모이며, 특히 해군 경비를 또 다시 이용하여 궁궐에 전등을 설치했다는 점은, 중국인들에게 갑오전쟁 후 북양해군의 전멸을 연관지어 떠올리게 한다.  궁궐에 작은 불을 밝히자고 나라의 운명을 어둠으로 몰고 간 셈이다.

 

 

 △ 20세기초, 건청궁(乾清宫)에 호화스런 샹들리에게 걸렸다. 웅장하고 화려한 궁전이 더욱 폼난다.

 

 

△ 고궁박물원 소장 중인 '에디슨'표 전구。

 

1900년, 팔국연합군이 베이징을 점령하고, 서원과 이화원 두 곳의 발전공소는 철저히 파괴되었다. 자희태후가 광서제를 황제자리에 앉힌 후, 새로 보수한 서원과 이화원은 여전히 자희태후의 상주지가 되었다. 당시 우전부 좌시랑을 맡은 성선회(盛宣怀)가 자진하여 발전소 복구에 전력을 다했다. 

은화 12만 4천 9백량을 준비하여, 독일 영화양행으로 부터 발전설비와 전등장치를 구매했다. 이화원에 5만 9백량을 분배하고, 서원에 7만 4천량을 분배하였는데, 사용 은화의 비율로 따져볼 때, 복구 후의 서원 전등공소가 이화원 전등공소보다 규모가 컷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1904년 중, 두 곳의 전등공소가 복구되어, 두 곳의 황실전림에 다시 전등불을 밝힐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전등이 자금성에는 언제 들어왔을까?

 

광서 33년 11월 22일(光绪,1907.12.26), 자희태후는 의지를 발표했다. "서원의 모든 발전공소를 모아 녕수궁에 전등을 설치하라. 자금성 바깥에 기계를 설치하고, 연내에 마치도록 한다' 이 의지의 내용에 보면 자금성 바깥에 기계를 설치하라고 했는데. 바로 발전기방을 말하며, 동화문 인근의 북지자 대비원(北池子大悲院)내에 설치되었다.

 

 

△ 양심전 동난각의 전등, 1920년대 초 촬영。

 

1908년 1월(음력으로 계산하면 1907년이다), 자금성 최초의 전등이 불을 밝혔다. 자희태후는 왜 '연내'에 녕수궁(宁寿宫) 전등설치를 지시한 것일까?

<청실록(清实录)> 에 의하면, '광서24년 새해 첫날, 광서황제는 먼저 봉선전에서 예를 행하고, 문무백관을 이끌고 자녕문으로 향해 자의태후에 경축예를 표한 후, 태화전에서 대신들의 인사를 받는다. 다시 대고전, 수황전으로 가서 예를 행하고, 마지막으로 황제 본인은 녕수궁, 악수궁으로 가서 다시 자희태후에 인사를 드린다.'

 온 종일 이리 서두르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초 닷새부터 초 파일까지, 4일간 광서황제는 매일 녕수궁, 악수당에 가서 태후를 알현해야 한다. 초파일 자희태후가 서원에 거주키 위해 자금성을 떠난다. 즉, 새해초 8일간, 자희태후는 자금성내 녕수궁에서 머물며, 74세의 태후가 신년에 전등 빛을 누리고 싶어 조급했던 것이다.

 

△ 자금성 서육궁 지역의 전등, 1920년대 초 촬영。

 

그해 3월 14일, 내무부는 증기기관, 발전기 및 전등, 자동차 등을 구매하였으며, 자금성에서 사용하는 전등 규모는 더욱 확대되었다.

자희태후와 광서제는 그해 11월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자금성내의 전등 확장 공사는 멈추지 않았다. 선통 원년(宣统, 1909년), 서원 전등공소는 황태후의 의지를 받았다. 내용은 "장춘궁, 건복궁, 어화원 등 각 궁과 거리 등지에 전등을 설치하라, 먼저 건복궁 정전 안팎에 전등을 신속히 설치하고, 나머지 전당도 계속 처리하라" 였다. 이것으로 볼 때, 자금성내 전등의 사용은 이미 최초의 녕수궁 한 구역에서 궁궐 전체 규모로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마지막 황제 부의 재임시절 사진중에서 자금성내 전등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 자금성 곤녕궁 동난간 전등, 1922년 촬영。

 

△ 숭경전 동곁방 전등, 1920년대초 촬영。

 

△ 수방재 원락내의 실외 전등, 1920년대 초 촬영。



베이징관광국 한글공식사이트     최종수정일: 2016-06-03 14: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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