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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 주요볼거리, 고궁박물원 내정 후삼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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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궁은 구조와 기능에 따라 외조(外朝)와 내정(内廷)으로 나뉜다. 그중 내정은 황제가 일상적인 정무를 처리하고 왕후와 첩 및 그의 자녀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주요 건축물로는 간칭궁(乾清宫, 건청궁), 자오타이뎬(交泰殿, 교태전), 쿤닝궁(坤宁宫, 곤녕궁)이 있다.

 
 
 
건청궁(乾清宫)
 
 


 
사진 : zhangyi
 
 
건청궁(乾清宫)은 황제의 침궁(正寝)이다. 명 영락년 건설되었다. 일찍이 여러차례 화재와 재건축을 반복해왔다. 현재 건축은 청 가정3년(1798년)에 지은 것이다. 건청은 청렴하고 공정함을 의미한다.
 
명대부터 청나라 초기까지, 건청궁은 황제가 조정을 통치하고 거주를 겸한 곳이다. 명청 황제가 서거한 후에는 이곳에 격자창을 세우는 데, 이는  천수를 다하고 집에서 편히 잠든다(寿终正寝)는 표시한다.
 
청 옹정황제(雍正)이후, 황제의 침궁이 양심전(养心殿)으로 이전되었다. 그러나 이곳은 여전히 군왕이 정무를 보고 대형 행사를 열던 중요한 궁전 중 하나다. 청 강희(康熙), 건륭(乾隆) 황제는 일찍이 이곳 건청궁에서 천수연(千叟宴) 잔치를 열었다.
 
궁내에는 순치황제(顺治)가 직접 적은 정대광명(正大光明) 편액이 걸려있으며, 편액 뒤편은 청대 황제들이 사후 왕위 계승자를 지정한 조서(建储密匣)를 놓아두는 곳으로 사용했다.  
 
 
 
 
交泰殿 (교태전)
 
 
 
 
사진 : zhangyi
 
 
교태전(交泰殿)은 건청궁(乾清宫)과 건녕궁(坤宁宫)사이에 위치하며, 형식은 중화전(中和殿)과 같다. 명나라의 가정(嘉靖)제 시기에 세워졌으며, 가경(嘉庆)제 2년 즉,1797년에 발생한 건청궁 화재 이후 중건되었다. 교태는 <주역(易经)>중 천지교태(天地交泰)에서 따온 말로, 건곤, 음양, 상하가 서로 합하니, 만물이 순탄하고 생육할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교태전의 면적이 후삼궁 중 가장 작은 건물이다. 자금성은 태화문에서 건청궁까지 용으로 장식되지만 교태전에서 용봉이 날리는 문양을 장식으로 한다. 교태전 중앙 보좌 위에는 청 강희제(康熙)가 적은 "무위(无为)" 편액이 걸려 있다. 교태전 좌우에는  거대한 동항아리 물시계와 기계 자명종이 있는데, 궁내 시간의 표준이 되었다.
 
교태전은 명,청 시기에 황후가 중대 경축일에 조정의 축하를 받는 장소이다. 봄날 친천례(親蚕禮)를 행하기 전에 황후가 교태전에 와서 뽕을 딸 도구를 확인하였다.
 
청 건륭(乾隆)년 이후 황권을 상징하는 25방 옥새를 보관했다. 정월에 길일(吉日)을 택해 개보의식(開寶儀式)을 거행하고 일년의 국정이 시작하는 것을 의미하고 년말에 봉보의식(封寶儀式)이 열렸다.
 
명나라 때 환관(宦官)이 권력을 독점하던 바 있어 청나라 순치제(顺治帝)가 전조(前朝)의 교훈을 삼아 “內宮不許干預政事”(환관이 국정을 간섭하기가 불가하다는 뜻)이라는 철판을 교태전에서 설치한 바 있다.
 
 
 

곤녕궁 (坤寧宮)
 
 
 
사진 출처: tuchong

 
곤녕궁(坤宁宫)은 내정의 후삼궁중 하나로 명나라 영락 18년(1420년)에  최초로 지어졌고 수차례 보수이나 재건되었다. ‘곤녕’은 곤지녕정(坤地宁定)으로 뜻한다. 
 
여기는 명,청나라 황후의 정궁(正宫)였다. 곤녕궁에 최초로 입주한 사람은 명나라 성조의 황후인 서씨였다. 그 후 명나라의 황후가 다 곤녕궁을 침궁으로 했고 이자성(李自成)이 베이징을 점령하였을 때 명나라 마지막 황후가 목메어 죽었다.
 
청대, 곤녕궁이 비록 정궁으로 불리웠지만, 사실 곤녕궁은 궁궐내 샤머니즘제신의 장소이자 황제의 신혼방으로 사용되었다. 어린나이에 황제에 오른 강희(康熙), 동치(同治), 광서(光绪) 세 황제와 부의(溥仪)가 결혼시에 모두 이곳에서 이틀을 지내었으며, 그후에 건청궁(乾清宫)이나 양심전(养心殿)으로 옮겨갔다. 게다가 황후도 평상시에 이곳에 머물지는 않았다.
 
청나라 때 곤녕궁은 샤머니즘 신에게 제를 올리는 주요 장소였다. 전내는 만주인이 동북지방에의 풍속에 의해 “주머니 집,만(萬)자 온돌,연통이 지면에 자리 잡다”는 형식이었다. 제사날에 여기에서 검은색의 돼지 두마리를 도살하고 왕공 신하나 궁정의 시위에 배당했다. 제사 고기가 소금을 안들여 맛도 없지만 곤녕궁에서 고기를 먹는 것은 묘비에 새길 만한 영광이었다고 한다.
 
 


베이징관광국 한글공식사이트     최종수정일: 2018-05-28 15:5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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