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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 주요볼거리, 고궁박물원 후궁 3곳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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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원에 들어서 중추선을 따라 앞쪽으로 가면 먼저 거대한 건축군들이 과거 봉건왕조의 커다란 야심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동서 양측이 동육궁(东六宫)과 서육궁(西六宫)에서는 내정 구역의 치밀한 배치와 함께 궁궐생활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경인궁 (景仁宮)
 
 

 
사진 출처: 图虫
 
경인궁(景仁宫)은 자금성 동육궁(东六宫)지역에 있다. 초기명은 장안궁(长安宫), 명 가경년(嘉靖年 16세기중반)에 지금의 이름을 변경했다. 경인은 자애롭다는 의미를 가진다. 경인궁(景仁宫)은 이진원락(二進院落)이며 명나라 때까지 줄곧 이 격식을 유지해 있다. 경인궁 문밖에 한백옥 영벽이 있으며 원나라 유물이라고 전했다.
 
명청 양대시기, 이곳은 후궁의 거주지였다. 청대 강희제(康熙帝)의 생모 동가씨(佟佳氏)가 일찍이 이곳에 거주했으며 이곳에서 현엽(玄烨, 강희제 본명)을 출산했다. 옹정제(雍正帝)의 희귀비(熹贵妃 건륭제 생모), 광서제(光绪帝)의 전비(珍妃)도 모두 이곳에 거주했다.
 
오늘날에 여기는 고궁박물원에서 기증 문물만을 진열한 곳으로 내부에 ‘경인방(景仁榜)’을 설치하고 경인궁 ‘경앙인덕’(景仰仁德,인덕을 앙모함)을 이용해 고궁박물원에 문물을 기증하는 인사들에게 감사 및 경앙의 뜻을 표한다.
 
 
 
 
영화궁(永和宮)
 
 
 
사진 출처: 图虫
                          
 
 
영화궁은 내정 동육궁(東六宮)의 하나로 경양궁(景陽宮)의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명 영락18년(1420년)에 지어졌고 초기명칭은 영안궁(永安宮)으로 가정(嘉靖)제 시기에 영화궁이으로 개명했다. 영화는 오래도록 화합한다는 의미를 지니며, 서육궁(西六宮)의 장춘궁(長春宮)과 서로 호응한다.
 
영화궁은 이진원락(二进院)이며 명청 양대시기에 황후와 후궁의 거처였다. 전원 정전은 너비(面闊)가 5칸이며, 가운데 방에는 '의소숙신(仪昭淑慎)'이라는 네 글자가 쓰여있는 편액이 걸려 있어 이는 건륭제가 직접 쓴 글자다.
 
명청 양대시기에 황후와 후궁의 거처였다. 명 숭정제(崇祯)때 전귀비(田贵妃), 청 강희제(康熙)때 덕비(德妃, 옹정제의 모친으로 인수황태후),청 도광제(道光) 때 정귀비(静贵妃) 와 광서제(光绪)때의 옥비(瑾妃)가 모두 이곳에서 거주했었다.
 
 
 
 
익곤궁(翊坤宮)
 
 
 

 
사진 : zhangyi
 
익곤궁(翊坤宫)은 서육궁 지역 중부에 위치한다. 명나라 영락 18년(1420년)에 지었고 만안궁(万安宫)이라고 불렀지만 가정제 14년(1335년)에 익곤궁이라고 개명되었다. 청나라 말기에 익곤궁과 저수궁(储秀宫)이 연결되어 사합원이 이뤄졌다.
 
익곤궁 안에 인테리어는 곳곳에서 평안길상(平安吉祥)의 의미를 구현한다. 예를 들어 문창 장식용의 만자단문과 오복봉수 문양이었다. 명간에 사태후가 쓴 ‘有容德大’ 이라는 판액이 걸렸다. 양측의 화리목 칸막이에 각각 희작등매(喜鹊登梅)와 등나송전지(藤萝松缠枝) 문양을 새겼다. 전 앞의 계단 아래 동봉, 동학, 동로 각각 한 쌍이었다.
 
지금까지도 정전(正殿) 앞 회랑에 부의(溥仪)가 퇴위 할때 설치하였던 그네 하나가 있었으나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명,청나라에 익곤궁이 후비들의 거주지이며 가장 유명한 이는 만력(万历)제의 정귀비(郑贵妃)이었다. 만력 년간에 가장 사랑받은 귀비로  황제의 셋째 아들을 낳았다.
 
익곤궁 후전(后殿)이 체화전(體和殿)이며 청나라 말기에 저수궁(储秀宫)으로 가는 복도로 개조됐고, 서태후 50세 생신 때 여기에서 축하를 받았고 광서제(光绪帝)가 간택도 여기서 하였다.
 
 
 


베이징관광국 한글공식사이트     최종수정일: 2018-05-28 1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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