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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의 정원 1. 이화원-상상을 뛰어넘는 예술혼?욕심?

  • 입력 2013-06-27 14:48:43 | 조회 2035 | 추천 198
  • 출처 환경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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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뛰어넘는 예술혼의 정점, 이화원
 천하를 소유하려는 욕심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치르면서 베이징을 찾는 관광객이 늘었다. 가장 뚜렷이 시대에 따른 변화를 보이면서도 천하를 가지려는 중국인의 욕심이 드러나는 곳은 바로 중국의 정원이다.
중국 베이징의 수많은 정원은 사람들의 휴식장소이자 역사교육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올림픽 기간 유명관광지들인 이들 지역이 갖고 있는 매력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질 것이다.
중국의 정원의 모습을 고찰하되 그 속에서 역사와 문화, 휴식 그리고 중화문화의 장대함과 그들의 자긍심등을 다루면서 세계로 도약하고 있는 중국인을 들여다 보고자 한다. 중국의 정원은 총 3부로, 이화원과 원명원, 그리고 현재 공사중인 올림픽공원을 집중조명한다. <편집자 주>


 [#사진]이화원은 9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세계적 유산이다. 베이징 서북부에 위치한 중국 황실의 여름정원인 이화원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인 베이징 황실의 여름 피서지였다. 대륙성기후의 전형적인 특징을 띠고 있는 베이징은 겨울엔 한파가 여름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자연적인 큰 강과 호수가 없기 때문에 그 더위는 한층 더했고 12세기 금ㆍ원나라 때부터 그나마 작은 호수가 있던 이화원은 황실정원이 될 수 있었다.

이화원은 1750년 청나라 건륭황제에 의해 대폭 확장됐고 1860년 영ㆍ불 연합군의 2차 아편전쟁 공격으로 대부분 파괴됐다가 서태후에 의해 재건 확장돼 이후 중국의 정사를 돌보던 황실의 역할까지 한 황궁급 정원으로써 질곡의 역사를 모두 겪은 장소이다.

중국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우공이산’
이화원의 면적은 290㏊로 천안문 광장의 6배에 달한다. 그중 4분의 3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쿤밍호(昆明湖)로 220만㏊에 달하는 바다와 같이 넓은 호수이다. 그러나 이 호수는 자연적으로 생성돼 있던 호수가 아닌 사람의 손으로 파서 만든 인공호수이다. 굴삭기와 같은 건설장비가 없던 시절 이 넓이의 호수를 파고 그 판 흙으로 쌓아올린 흙이 산이 돼 이화원의 북쪽 만수산을 이뤘다.

쿤밍호와 만수산은 이화원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데 그 모두가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 졌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다. 물이 많고 경치가 빼어난 강남의 수저우를 모방해 만든 이 호수는 더운 여름 뱃놀이를 하며 보내고 싶던 황실의 욕심과 천하의 주인으로서 한눈에 천하의 바다까지 소유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욕심이 만들어낸 상상할 수 없는 노동력의 작품이자 역사이다.

 [#사진]
쿤밍호의 인공산인 만수산의 중심에는 서태후의 생일 연회를 진행하던 연회장인 배운전과 그 뒤로 하늘과 신의 세계로 상징되는 불향각이 존재한다. 불향각 뒤로 산의 정상에는 ‘군향계’가 위채해 여러 불상을 배치해 두고 있다. ‘군향계’의 ‘관음보살’과 불향각의 ‘천수천안관음상’은 서태후를 바라보며 하늘의 권력을 그녀에게 위임했음을 나타내고 있으며 41m의 석조기단 위에 우뚝서있는 불향각의 위엄 앞에 누구도 함부로 서태후의 권위를 넘볼 수 없게 하려는 숨은 의도를 담고 있다. 궁전형식으로 유리기와를 통해 권위를 한층 더 갖추고 있는 불탑을 중심으로 종교건축물인 전륜장, 오방각과 휴식, 오락을 위한 청리관과 화중유, 경복각이 위치해 있다.

만수산은 인공산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적인 어떠한 산들보다 더 자연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정형되지 않은 나무와 돌의 배치, 건물의 배치와 함께 흙으로 쌓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돌들을 배치했으며 주변으로 정자와 건물까지 지어 호수와 주변경관의 빼어남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그 노력과 화려함에 자연을 인공으로 품어내는 중국 정원의 특징과 그 노력의 정점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야외미술관 ‘장랑’과 덕화원의 경극장
 이화원은 휴식의 공간이었던 만큼 엄청난 예술혼이 녹아 들어있다. 그 절정 중 하나가 바로 호변을 따라 만수산의 건축물들과 아래의 자연을 연결시켜주는 세계에서 가장 긴 화랑인 ‘장랑’이다.

 [#사진]
만수산의 중심축인 배운적을 기준으로 대칭을 이루며 총 길이 728m에 273칸으로 돼 있는 화랑의 천장과 기둥, 기둥 사이사이를 이어주는 모든 공간에 1만4000여 폭의 전통색채화, 풍경화, 산수화, 인물화, 화조도 등 역사와 신화, 자연과 전설을 담은 그림들이 끝도 없이 그려져 있다. 호수를 바라보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끝없이 펼쳐진 그림의 화랑을 걷노라면 마치 자연과 하나 된 신선의 세계를 걷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화랑 중간중간에 유가, 기린, 추수, 청요의 팔각정은 걸어가는 이의 휴식을 도울 뿐만 아니라 각각이 춘하추동 사계절을 표현했고 굴곡과 꺽임을 통해 단조로움을 극복했다.

이러한 굴곡은 단조로움을 없애는데 그치지 않고 시야의 변화를 통해 절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호변을 따라 걷는 긴 화랑과 그 속에 그림을 그릴 생각을 할 수 있었던 능력과 힘은 다른 나라와 민족이 전혀 해보지 못한 독특함이며 그 건축의 양태와 수없이 많은 그림들 모두가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써 승화돼 있다.

덕화원의 대극장은 서태후의 이화원 확장시 1891년부터 1895년까지 4년간 은화 71만냥을 들여 만들어졌다. 현재에도 중국의 4대 경극극장이며 청대 3대 경극극장 중 최대의 크기를 자랑한다. 목조건물임에도 신출귀몰하는 경극의 효과를 위해 바닥과 천장에 각각 6개, 7개의 특수장치를 설치했으며, 음향과 외경을 절묘하게 배합해 만든 건물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다. 서태후가 이화원에서 지내는 기간 동안 그녀는 자주 경극을 관람했는데 특히 생일을 중심으로 생일 전 3일, 생일 후 5일간은 계속 경극을 관람하며 여가를 보냈다고 한다. 이 경극장은 1. 2차 아편전생으로 수많은 약탈과 파괴를 당하고 청일전쟁이 일어나던 시기에 지어진 서태후의 사치의 상징이기도 하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이화원은 중국 전통원림의 규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그 중 진정한 아름다움을 쉽게 보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과 수많은 기석을 장식으로 이용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사진]
이화원의 정문이라 할 수 있는 동궁문을 지나면 인수문이 존재한다. 인수문의 양 옆으로 윈숭이와 돼지의 형상과 비슷한 기석이 서 있으며 이는 각각 손오공과 저팔계를 상징해 황제를 잘 보살피고, 악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인수문의 안쪽으로는 노인성이라 불리는 돌이 가운데를 떡 하니 버티고 서 있어 인수전의 화려함을 한눈에 보는 것을 가리고 있다.

인수문을 나오고 돌을 지나야 전설의 동물인 기린이 축복을 빌고 있고, 용과 봉황이 보휘하는 인수전의 금빛 화려함을 볼 수 있다. 인수전은 서태후가 국사를 관장하던 곳으로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다. 인수전의 그 화려함을 쉽게 보이지 않는 만큼이나 그 뒤의 쿤밍호와 이화원 전경 또한 쉽게 보이지 않는다.

인수전을 통과해 구불구불한 길과 나무, 건물로 가려져 무엇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길을 지나야만 드넓은 호수와 멀리보이는 향산의 절경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만들었다. 아름다음을 쉽게 보여주지 않으며 갑자기 나타난 절경에 감동을 주는 배치는 이화원을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물되는 감동이다.

이러한 배치는 황제가 주로 거쳐했던 장수와 즐거움의 전당인 ‘낙수당’에도 이어진다. 낙수당의 가운데에는 세계 최대의 원림석이라 불리는 청지수(푸른영지돌 이란 뜻)가 호수의 전경을 한눈에 보는 것을 가리고 있다. 이 돌은 명대 미만종이란 부자가 베이징 교외에서 발견해 옮기던 것으로, 옛날 수백톤이 나가는 돌을 운반하기 위해서는 겨울을 기다려 수로를 파고 물을 얼려 밀고 오는 것 뿐이었는데 이 돌을 운반하다가 그 집안이 가산을 탕진해 ‘패가석’이라 불리던 것을 건륭황제가 가져온 것이다.

양 옆으로 분재를 놓고 자신의 집안에서도 그 아름다움을 쉽게 볼 수 없게 만든 그 구조는 ‘수목자친’이란 문을 넘어서야 호수의 경관과 뱃놀이를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러한 배치는 외부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에도 해당돼 진정 중요한 곳을 한눈에 보여주지 아니하고, 악한 기운이 직접 들어오는 것을 방지해 보호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 중국 전통원림의 양태라 할 수 있다.

이화원의 전체적인 원림의 성격
 이화원의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기이하고 귀한 나무들로 선경을 옮겨놓은 듯 조경이 돼 있으며 나무들의 단조로움을 기이한 돌들의 배치로 보완하고 있다. 기석들은 그 아름다움에 즐거움을 줄 뿐만 아니라 그 특이한 모양으로 귀신이 와서 보고 놀라 도망치게 한다는 부적의 의미도 존재했다.

도교의 일수삼산(一水三山)의 원칙에 따라 쿤밍호는 신선의 섬인 봉래, 방장, 영주를 상징하는 인공섬을 갖고 있으며 항저우의 서호를 본따 만든 만큼 동티와 서티에는 17공교, 옥대교, 명교, 명경루 등이 수색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뤄 땅 위에 만들어진 선경으로 보이게 했다.

또한 만수산의 지혜해와 군향계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불교의 해탈의 의미인 후산으로 넘어가는 관문역할을 했고 불교의 사대원칙(땅-사각, 불-삼각, 바람-반달, 물-원)에 따라 다양한 건축물들로 후산을 표현했다.

 [#사진]
이는 종교와 원림의 조화가 이뤄진 모습으로 이화원 어디에서나 근심을 덜어주고 소원을 들어준다는 ‘천수천안관음상’이 있는 불향각이 보이며, 호수 너머로 서쪽에는 향산의 불탑이 눈에 들어오게 한 배치로 항상 부처와 함께 있다는 종교적 의미뿐만 아니라 신의 권력이 황제가 미치는 곳에 위임됐다는 정치적 의미까지 포함되게 했다. 또한 배산임수와 남향의 전통적인 풍수학과 호수와 산이란 자연지형을 이용 황제를 보호하려는 노력이 잠재해 있다고 볼 수 있다.

권력의 누수를 막고자 바로 앞의 물은 움직임이 적고 외각의 흐르는 물은 움직임이 크게 해 권력의 전승을 기원하고 있으며, 산책로까지 하나하나 돌조각으로 수놓은 완벽함은 전제권력의 무서움과 중국의 힘을 상징, 지금까지 이어내려 오는 중국문화의 원천으로써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천하를 호령하던 시기에 만들어져 서양세력에 의해 짓밟히고 파괴된 후 아시아 최고였던 해군군비까지 도용해 태평성대와 화려한 부활을 꿈꾸며 복원 확장된 이화원은 그 복구비용으로 쓰인 군사비 때문에 더욱더 제국의 몰락을 빠르게 가져왔다.

그러나 수없이 펼쳐진 중화민족 조상들의 손길은 올림픽을 맞아 남은 부분까지 완벽히 복구됐고 예전의 화려함을 되찾았다. 그 화려함 속 문화의 힘은 중국의 미래를 밝게 비춰주고 있다. 중국이 있게 만들 수 있었고, 중국이기에 다시 그 화려함이 복원될 수 있었던 그 문화와 역사의 힘은 대륙의 정신을 이어받아 이제 세계 속에 뻗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 1백년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의 모든 역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중국이란 나라의 힘에 대해 우리는 그동안 너무 과소평가하지 않았나 돌아봐야 한다는 생각은 이화원을 돌아보며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힘과 문화는 이미 알게 모르게 우리 삶의 깊은 부분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것은 확실하기 때문일 것이다.

 <환경일보 심은용 기자>

본 기사는 환경일보에서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중국의 정원에 대한 3편의 기획기사중 하나입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환경일보와 기자에게 있습니다.



베이징관광국 한글공식사이트     최종수정일: 2013-06-27 14:4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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