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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가장 아름다운 건물 1 - 자금성(紫禁城): 군주제도의 절창

  • 입력 2014-11-10 09:52:05 | 조회 4191 | 추천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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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아름다운 자금성)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 6중 첫번째인 고궁(故宮) 자금성(紫禁城)은 군주제도의 절창을 들려준다. 오늘날 고궁 박물관으로 부르는 자금성은 고대 중국의 명청(明淸) 두 왕조때 황궁이었다.

명왕조 영락(永樂)제로부터 시작해 청왕조 선통(宣統)제에 이르기까지 도합 24명의 황제가 이 곳에 거처를 정했다. 고대 중국인들은 하늘나라의 황제 천제(天帝)가 하늘의 자미원(紫微垣)에 산다고 믿었고 그에 따라 황궁을 자금성으로 불렀다.

남북길이 960m, 동서너비 750m의 자금성은 10m 높이의 성벽과 52 m너비의 해자에 둘러싸여 있다. 명나라때인 1406년에 축조를 시작해 14년만인 1420년에 공사를 마친 자금성은 세계 최대의 황궁건축물의 군락이다.

 

(사진설명: 자금성 전경)

자금성은 1987년에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자금성을 이렇게 평가했다. "자금성은 오백여년동안 유지된 최고의 권력 중심지였고, 정원과 가구, 공예품 등을 수용한 9,000여칸의 방을 가진 방대한 건축군락으로 명청시대 중국문명의 견증자이다. "

베이징성 남쪽의 영정문(永定門)에서 시작되어 북쪽 종고루(鐘鼓樓)까지 이어지는 도성의 남북향 중심선은 7.8km에 달한다. 자금성은 바로 그 중심선상, 베이징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자금성의 정문은 오문(午門)이고 북문은 신무문(神武門)이며 동쪽과 서쪽에 동화문(東華門)과 서화문(西華門)을 냈다. 성안의 건물은 건청문(乾淸門)을 중심으로 황제가 나라일을 보는 외조(外朝)와 생활을 하는 내정(內廷)으로 나눈다.

 

(사진설명: 외조의 3대 궁궐)

남쪽의 외조는 태화전(太和殿)과 중화전(中和殿), 보화전(保和殿) 3대 궁궐을 중심으로 하고 북쪽의 내정은 동쪽과 서쪽에 여섯 궁궐을 거느린 건청궁(乾淸宮)과 교태전(交泰殿), 곤녕궁(坤寧宮) 3대 궁궐을 위주로 한다.

흘러간 어젯날의 야사들이 신비의 베일에 싸인 황궁에서 벌어진 한 남자와 그를 둘러싼 주변 수백여명 여인들의 스토리를 펼쳐보여 천하를 다스리던 영웅의 기개는 남녀간 관계의 그늘에 가리워있기도 한다.

하지만 자금성의 진미를 보려면 야사에만 빠져 있는 엽기적인 시각을 버리고 차분하게 궁궐의 벽돌과 기와 한 장, 나무와 풀 한 그루를 보아야 한다, 그러면 흘러간 오백년 세월속에서 24명 황제의 인생이 보일 것이다.

 

(사진설명: 웅장한 태화전)

길게 뻗은 오문의 통로를 나와 태화전 가까이로 다가서면 세계적으로 가장 웅장한 목조건물이 모든것을 위압하는 기세로 눈앞에 펼쳐진다. 세 계단으로 조성된 한백옥 단위에 조성된 태화전은 건물높이가 12층 건물에 해당하는 35.05m에 달한다.

건평은 2,377㎡로 축구장의 반만큼한 크기이다. 두겹으로 된 팔작 지붕의 건듯 쳐들린 귀퉁이에 10마리의 짐승이 조각된 태화전은 고대 중국의 건축물 중 최고의 급별을 자랑한다.

상상을 초월하게 넓은 태화전은 규모에서부터 탁월함을 보여주고 채색의 그림이 즐비한 대들보와 천정 중앙의 장식물에 달린 커다란 보석, 지름 1m의 굵은 기둥에 화려한 용조각을 망라해 호화의 극치를 자랑하는 내부장식도 어울린다.

 

(사진설명: 태화전의 내부)

호화롭고 사치의 극치를 자랑하는 태화전에서 최고로 력서리한 곳은 바로 황제의 보좌이다. 15세기부터 오백년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보좌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왔던가.

일부는 본의 아니게 이 보좌에 올라 자신의 성품과 운명을 바꾸었다. 그들은 이 보좌에 오르는 그 순간 정상에 오른 기쁨에 빠지는 동시에 비운의 종소리를 들었으리라.

외부에서는 천자의 지고무상한 지위와 그 막강한 권력만 흠모하지만 그 모든것을 가진 본인은 그렇지 않다. 오죽하면 명왕조의 마지막 황제 숭정(崇禎)이 가족에게 "다시는 제왕가문에 태어나지 말라!"고 울부짖었겠는가.

(사진설명: 건청궁 일각)

청왕조의 마지막 황제 부의(溥儀)는 보좌에 앉아 울면서 "나 집에 갈래" 라고 했고, 가정(嘉靖)제는 연단을 굽는데 빠졌으며, 만력(萬歷)제는 부를 모으는 재미로 살고, 천계(天啓)제는 목공일에 열중했으며, 순치(順治)제는 불교에 귀의했다. 황제의 보좌에 앉고 천하를 독차지했으나 자신의 생활을 잃었기 때문이리라.

건청문을 넘으면 황제의 사적인 공간이 펼쳐진다. 자금성이 세워져서부터 청왕조 옹정(雍正)제가 침소를 양심전(養心殿)으로 옮기기까지 건청궁은 줄곧 황제의 침궁이었다.

중국을 통일한 청왕조의 세번째 황제인 옹정제는 침소는 건청궁에 두지 않았지만 왕조의 미래를 이 곳에 남겨두었다. 황권을 쟁탈하기 위해 형제가 싸우는 것을 막기 위해 황권승계자의 이름을 쓴 유조를 건청궁 정대광명(正大光明) 간판뒤에 숨겨두었기 때문이다.

 

(사진설명: 자금성 후궁의 닫혀진 문)

13년간 황제의 보좌에 앉은 옹정제는 백여년뒤 자신이 선택한 승계자의 후손 중 한 여인이 청왕조의 강산을 반백년동안 지배하고 두 명의 청왕조 황제를 선택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으리라.

그 여인이 바로 자희(慈禧)태후이다. 옹정제와 자희태후는 너나할것없이 무정하기 그지없고 이해타산에 빨랐으며 권력을 무엇보다도 귀중하게 여겼다. 두 사람이 다른 점이라면 옹정제가 청왕조를 번성에로 이끈 반면 자희태후는 왕조를 멸망에로 몰아넣은 것이다.

녕수궁(寧壽宮) 북쪽의 정순문(貞順門)안에 진비정(珍妃井)이라는 우물에 자희태후가 뽑은 두 황제 중 한명인 광서(光緖)제의 애환이 어려 있다. 1900년 8개국 연합군이 베이징을 침략했을때 자희태후는 자금성을 탈출하기에 앞서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는 광서제의 후궁 진비를 이 우물에 투신시켰던 것이다.

 

(사진설명: 자금성의 키 높은 담)

그로부터 그러지 않아도 꼭두각시 황제였던 광서제는 마지막 남은 존엄까지 깡그리 잃고 분노와 비애에 잠겼다. 사랑하는 여인마저도 지키지 못하는 황제가 나라를 어떻게 지킬것인가.

1911년, 광서제가 세상을 버린지 3년뒤에 청왕조가 무너지고 광서제의 황후가 왕조의 마지막 황제를 대신해 퇴위각서에 서명했다. 그로써 2천여년동안 지속된 중국의 황제제도가 막을 내리게 되었다.

건청문 옆의 작은 문을 들어가면 청왕조 후반에 황제들이 침소로 사용한 양심전이 보인다. 오늘날 양심전에는 수를 헤아릴수 없는 많은 골동품들이 즐비하지만 그것 보다도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방에 얽혀 있는 역사의 장면들이다.

(사진설명: 양심전 일각)

옹정제가 이 방에서 유조제를 시작했고 건륭(乾隆)제는 이 방에서 출병계획을 세웠으며 가경(嘉慶)제는 이 방에서 최고의 간신 화신(和紳)을 처단하기로 결정했고 도광(道光)제의 아편소각명령도 이 방에서 서명되었으며 태후를 반대하기 위한 광서제의 변법도 이 곳에서 시작되었고 심지어 마지막 황제의 퇴위여부도 이 방에서 결정되었다.

양심전은 청왕조가 번성을 통해 멸망에로 나아간 전 과정을 지켜본 역사의 견증인이라 하겠다. 1861년 양심전의 동쪽방에서 어린 황제 동치(同治)제 뒤에 주렴을 걸어 놓고 젊은 두 황후가 그 뒤에서 황제를 조종했다.

그로부터 태후의 수렴청정이 시작되어 청왕조의 최고권력이 한 여인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자희태후가 왕조를 지배한 50년은 청왕조가 가장 약하고 가장 어려운 때였다. 해군 군비로 중국 최대의 정원 이화원(颐和園)을 보수한 어리석은 자희태후가 스스로 청왕조를 멸망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사진설명: 자금성의 해자와 성벽)

자금성 북쪽의 신무문을 나서면 사람들이 몰려와 카드와 기념 티셔츠 등을 사라고 조른다. 인력거를 경영하는 아저씨는 베이징의 골목은 돌았냐고 웃으며 묻기도 하고 즉석사진을 찍으라고 카메라맨도 다가온다.

어젯날 서민은 근처에 얼씬도 못하던 신무문 광장이 오늘날은 일상의 무대로 된 것이다. 해자위에 세워져 있는 다리에 서서 머리 돌려 바라보니 키 높은 성벽은 여전하고 성벽위의 영롱한 각루(角樓)도 변함이 없다.

맑은 해자의 물에는 푸른 하늘과 붉은 성벽이 거꾸로 비껴 조화롭다. 군주제도 천고의 절창을 들으며 지고무상의 황제까지 어느날 모든 것을 잃는 것을 생각하면 이 세상에 수용하지 못할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진설명: 경산공원에서 본 자금성)

설명:

날씨가 좋고 청명한 날에는 남쪽문에서 자금성에 진입해 북쪽으로 신무문을 나간 다음 도로를 건너 자금성 바로 북쪽의 경산(景山)공원도 함께 보는 것이 좋다.

경산의 정상 만춘전(萬春亭)에 올라 베이징의 중심선과 그 중심선상에 자리한 자금성을 내려다 보면 첩첩한 황금색의 지붕을 떠인 대궐이 심히 장관이다.

자금성의 북쪽문을 나서면 도로옆에 북해(北海)나 이화원, 향산(香山), 팔달령(八達嶺) 만리장성, 천단(天壇)공원, 공왕부(王府) 등을 망라한 베이징의 다른 명소로 가는 버스역이 보인다.

 

(사진설명: 자금성 일각)

위치: 베이징(北京, Beijing)시 동성(東城, Dongcheng)구

교통: 1호선 지하철을 이용해 천안문(天安門) 서쪽이나 동쪽에서 하차하거나 장안가(長安街)를 경유하는 모든 버스를 이용한다.

계절: 아침과 황혼



베이징관광국 한글공식사이트     최종수정일: 2014-11-10 13: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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