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시 관광발전위원회 한글공식사이트 테마특별판


베이징의 지도나 지하철역을 살펴보면 유독 성문의 이름을 가진 지명이 많다. 이는 옛 베이징성의 성문이름으로 서울의 동대문, 남대문과 같은 존재로 볼수 있다.
베이징 성은 크게 내성과 외성으로 나눌수 있으며, 내성에는 아홉개 문이 있었다. 먼저 동쪽성벽의 둥즈먼(东直门), 차오양먼(朝阳门), 남쪽에는 충원먼(崇文门), 정양먼(正阳门), 쉔우먼(宣武门), 서쪽으로 후청먼(阜成门), 시즈먼(西直门), 북쪽으로 더셩먼(德胜门 )과 안딩먼(安定门)이다. 각각의 성문들은 모두 다른뜻의 이름과 특징들을 지니고 있다.

베이징 성문이야기 - 내성아홉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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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승문 德胜门

군인과 군대의 전용문, 专走兵车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는 뜻으로, 군대의 전용문이라 할수 있다. 당시에 주로 북방지역에서 전쟁이 일어났으므로, 더셩먼을 통해 출병이 이루어졌고, 승리를 얻어오라(得胜)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안정문 安定门

군대를 철수,해산시키던 곳 그리고 분뇨처리 마차가 다니던 곳.

전쟁에 나갔다 이겨서 돌아온 군사들을 해산시키던 문으로, 살아돌아온 병사들을 안정시킨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외에 분뇨처리 수레들이 다니던 전용문이기도 했다. 이는 디탄(地坛) 부근이 베이징의 주요 분뇨처리장이었기 때문이다.

동직문 东直门

벽돌, 기와 그리고 목재들이 드나들던 문

둥즈먼과 시즈먼은 백성들의 흥겨움이 동쪽으로 동해까지 서쪽으론 서쪽변경까지 닿게하자 (民兴教化,东至东海,西至西陲)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벽돌과 기와, 목재들의 전용문이다. 당시 벽돌 저장지가 모두 둥즈먼 바깥에 위치했다. 남방에서 부터 올라온 목재들이 이곳에서 모여 성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둥즈먼 성문 안에는 목재가공소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조양문 朝阳门

식량 전용 창구

뜨는 해를 맞이한다(迎宾日出)는 의미로 식량과 농산품들의 전용 길이었다.
당시에 철도 교통이 없었기에 남방의 식량물자들이 베이징으로 운송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강과와 운하를 통해 통셴(通县)지역에 도달하여야 했다. 양식과 식량들은 통셴에서 다시 수레에 싣어 성안으로 들여보내졌는데 이때 통과하던 문이 차오양먼이다.

차오양먼의 천정위에서 곡식낱알이 새겨져 있다. 성문으로 들어온 식량들은 근처의 창고에 예비용으로 보관되었다.
현재 차오양먼 인근에는 뤼미창(禄米仓), 하이윈창(海运仓) 같은 지명들이 남아 있는데. 이곳이 당시에 식량 창고였다는 것을 나타낸다.

숭문문 崇文门

술과 세금이 지나던 곳.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을 존중하는 의미로서 합덕문(哈德门)이라고 불리웠다. 민국시기에는 합덕문이라는 이름의 담배도 존재했다.

충원먼은 술차가 지나던 문이며, 또한 세금을 거두어 들이던 곳이다. 지나는 모든 상인들은 이곳에서 세금을 교부해야만 했다. 건륭시절 탐관인 허션(和珅)이 당시에 이곳의 감독관이었다.

정양문 正阳门

명청시기 지위 : 황제의 전용문

가장 높은 지위의 성문이라 할수 있다. 베이징 사람들은 이문을 첸먼(전문,前门) 이라 불렀다. 황제 전용의 "용차(龙车)" 가 지나던 길이라 "국문(国门)" 이라고도 불리웠다.

황제는 매년 두차례 이문을 통해 성밖을 나서는 데, 한번은 겨울철 톈탄 천제(天坛祭天)를 지내기 위해서이고, 또 하나는 센농탄(先农坛)에 제사를 지내기 위함이었다.

선무문 宣武门

호송차량이 지나던 곳

무예를 널리 알리는 곳(武烈宣扬)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원나라 시절 순승문(顺承门)이라 불리워 청조 초기까지도 계속 불리워왔다.

쉔우먼 밖에는 차이스커우(菜市口刑场) 형장이 있어서 수시로 이곳에 호송행렬이 드나들었으며, 이로 인해 죽음의 문(死门)이라 불리우기도 했다. 성문 천장에는 "后悔迟" 란 세글자가 새겨져 있다

부성문 阜成门

석탄이 드나들던 문

물자는 풍요롭고 백성은 안정되다 (物阜民安) 라는 의미를 지닌다. 동쪽편의 차오양먼(朝阳门)과 상응하는 위치이며, 석탄이 드나들던 전용문이었다.

베이징 서쪽의 먼터우거우(门头沟)는 석탄이 생산되던 지역으로, 베이징성에서 사용하는 석탄 전량이 먼터우거우에서 이 후청먼을 통해 공급되었다.

후청먼의 천정에는 매화한송이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중국어에서 매화을 의미하는 메이(梅)가 발음이 같은 석탄 메이(煤) 를 의미하는 것이다.

서직문 西直门

물을 싣은 나귀차가 드나들던 전용문.

동직문의 형제라 할수 있다. 물을 위한 전용문이었다.
성문의 천장에는 물의 파문 흔적이 새겨져 있다. 당시에 황제는 시내 우물의 물을 마시지 않는 대신, 옥천산(玉泉山)의 샘물을 길어 마셨다.

민국 설립후부터 푸이(溥仪)가 황궁에서 쫒겨날 때까지도, 매일 아침 시즈먼에는 푸이에게 공급할 물을 싣은 나귀수레가 이곳을 지났다. 게다가 군벌 집정시기에도 놀랍게도 끊이지 않고 물차가 이곳을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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