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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비쥐 (老北京的 六必居,육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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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비쥐(老北京的 六必居,liù bì jū,육필거) 소개

육필거(六必居,liù bì jū,류비쥐)는 산서성 임분(山西 臨汾) 사람인 조씨 삼형제가 명나라 가정 9년(1530년)에 설립한 상점이다. 조씨 형제가 경영을 잘한 데다가 육필거가 영업을 시작했을 때 지리적 위치또한 좋아 장사가 잘 되었다. 영업을 시작했을 때의 두칸 짜리 매장에서  네칸 짜리 매장으로 점포면적을 확대하였으며, 상가 뒷면에는 가공전문 수공업 공장을 증설하여 장사가 점점 번창해졌다.

육필거라는 점포이름의 유래와 육필거의 편액 출처에 대해 사회적으로 몇 가지 설법이 전해지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육필거의 점포이름 유래와 관련해 그 경영 제품이 장작, 쌀, 기름, 소금, 장류, 식초 6가지나 포함되었는데, 이 6가지는 백성들의 일상생활 필수용품이라고 하여 육필거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여섯 파트너가 함께 경영한 사업이라고 하여 육필거라고 불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외에 또 어떤 사람들은 육필거가 처음에는 주포(酒鋪: 술을 파는 집)로 부터 시작한 것으로 술을 빚을 때 반드시 6가지 요소를 거쳐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즉 반드시 양질의 원료만을 선별해야 하고 반드시 재료를 충분히 넣어야 하고 제작과정에 반드시 청결을 유지해야 하고 가공온도를 반드시 잘 조절해야 하고 반드시 좋은 설비를 사용해야 하고 물은 반드시 순수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이 몇 가지 내용에 원료 선별, 재료 사용, 제작방법, 설비, 시간, 순수한 물 등 술을 빚는 6가지 요구를 설명하였다고 하여 육필거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육필거는 6명의 과부가 설립한 것으로 이 부녀들은 너무 부지런하여 무슨 일이나 주도면밀하게 처리하며,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반드시 여섯 사람이 함께 해야 한다고 하여 육필거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런 설법들은 대부분 민간에서 전해지고 있으며 상가이름이 조씨 삼형제 때부터 시작하였는지에 대해서는 고고학 검증이 필요하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만은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장사 경영자들이 저들의 점포이름을 짓기 위해 대부분 경우에는 길하고 순조롭게 된다는 의미에 신경을 쓰는데, 육육대순(六六大順: 매우 순조롭다는 뜻.)은 중화민족의 전통상 민간에서 신앙하는 속담이다. 그렇다면 삼형제가 상가를 세웠을 때 한마음 한뜻으로 순조롭게 경영하여 노백성들의 생활을 위해 기여하려 했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점포의 편액에 대해서도 몇 가지 설법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육필거가 영업을 시작한 후 장사가 잘되어 점포면적을 확대하자, 지배인은 원래의 간판이 작다고 생각하여 글을 잘 쓰는 사람한테 부탁해 큰 간판에 글씨를 쓰게 하였다고 한다. 그 때 엄숭(嚴嵩)라는 사람이 북경에서 일없이 한가로이 살고 있으면서 점포에 와서 술을 늘 샀다. 그 당시 아직 관리직에 오르지 못하였던 엄숭은 차츰차츰 점포의 사람들과 친하게 되었는데, 점포의 동료들도 그의 서예솜씨를 알고 지배인에게 추천하여 엄숭더러 편액 글씨를 쓰게 하였다.

엄숭은 글자를 썼으나 낙관을 찍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쓰지 않았는가? 당시 엄숭은 자신이 작은 인물이기 때문에 낙관을 찍으나 찍지 않으나 관계없다고 말하였다. 육필거의 장사가 이렇게 잘 되는데 낙관을 찍으면 오히려 장사에 영향이 미칠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은 엄숭이 조정의 큰 관리가 되어 명성이 점점 높아졌다는 것이다. 엄숭이 쓴 이 편액을 글씨로 육필거는 북경에서 명성이 자자해졌다.

또 어떤 사람들은 육필거의 편액 글자는 엄숭이 큰 관리가 된 후에 휘호를 남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육필거의 술을 마시기 좋아하는 엄숭은 평소에 집안의 하인을 파견하여 다스란(大柵欄)에 가서 술을 사게 하였고 그 하인도 육필거의 지배인과 점차 사귀게 되었다. 지배인은 자기의 명성과 지위를 높이기 위해 이 하인에게 부탁해 엄숭 관리더러 편액 글씨를 써줄 것을 요구하였다.

하인은 이 말을 전달하기 난감하여 엄숭 부인의 여자 하인을 찾아 부인이 엄숭에게 부탁하게 하였다. 엄 부인은 여자 하인의 말을 들은 후 이 일을 처리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엄숭이 어찌 작은 점포의 이름을 써줄 수 있겠는가. 그런데 부인을 위해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한 총명한 여자 하인은 부인더러 이 몇 개 글자의 서예연습을 하게 하였다.그리하여 부인은 짬만 있으면 육필거라는 세 글자를 썼다. 어느 날 엄숭은 부인이 서예연습을 하는 것을 보고 육필거라는 세 글자를 거침없이 써서 부인더러 붙어놓게 하였다.

이리하여 엄숭의 친필이 지배인의 손에 쉽게 들어오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색 바탕에 금색 글자로 쓴 큰 편액을 육필거의 문미에 걸 수 있게 되었고 편액에 낙관을 찍지 못하였다. 당시 엄숭의 글자체를 모두 알고 있는 북경성의 수많은 관리들은 육필거 문에 걸려 있는 큰 편액을 보기 위해 서로 앞다투어 와서 술과 장아찌를 샀다. 육필거의 명성도 점점 커져 북경성에 신속히 전파되었다. 후에 서예가들이 편액의 글자체를 전문 연가한 결과 엄숭의 글자체가 확실하다는 것을 인정하였다고 한다.

이름을 어떻게 짓든 간에 편액 글자는 엄숭이 남긴 것이다. 육필거는 명∙청 시기에 장사가 상당히 잘되었는데, 역사 자료에 의하면 일년 사계절 내내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황궁 귀족과 대관리에서부터 일반 백성과 행상인 및 심부름꾼에 이르기까지 보통 식사는 물론 연회석상의 요리에도 육필거의 장아찌는 필수적으로 오르게 되어 있었다.

오이 장아찌 한 접시에 매운 무채 무침 하나를 주문해서 맛보면 향긋하기 그지없다. 그러므로 육필거의 장사에서 1냥이나 2냥씩 살 때도 있고 몇근이나 몇십근씩 살 때도 있으며, 스스로 먹기 위해 살 수도 있고 친척과 친구에게 선물하기에도 내놓을 만하며, 특히 외지에서 북경에 온 손님의 경우에는 큰 봉지나 작은 봉지로 사도 한 무데기나 되며, 대부분은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주는 것이다. 오늘날에 와서도 육필거에 오는 사람들은 아직도 이런 전통을 갖고 있다.

육필거의 장아찌는 아주 유명하다. 색상, 향기, 맛을 모두 갖추었다는 점이 노백성들이 사 먹기 좋아하게 된 이유라 할 수 있다. 육필거의 장아찌는 어느 것이나 다 유명한 데, 그 중에 춘장 팔보채, 오이잼, 춘장 선샹차이, 무우잼, 맵고 단 무채 무침, 맵고 단 배추 무침, 마늘 장아찌, 푸린(鋪淋) 간장과 시황(稀黃)장 등은 광범한 백성들이 좋아하는 품종이다.

이런 장아찌의 장맛은 그윽하고 신선하고 연하고 향기로우며, 짠맛과 단맛이 구미에 맞고 색깔과 광택이 보기 좋다. 특히 장아찌를 만드는 과정이 상당히 엄밀하고 제조방법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육필거에서 된장을 만들 때에 대체로 아래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선 양질의 황두를 따뜻한 물속에 담그어 놓은 후 시루 안에 넣어서 찐다. 그 다음에 밀가루와 함께 뒤섞어서 연자방아로 찧어서 부시운 후에 머쯔(模子)안에 넣고 깨끗하고 마른 천으로 덮은 후에 맨발로 서서 밟는다. 다 밟은 후에 머쯔(模子)에서 털어내서 가늘고 길게 하고 덩어리로 자르며, 석박(席箔)으로 잘 싸서 엄밀히 봉한 후에 나무 틀 위에 질서정연하게 놓는다. 발효한 후 석박(席箔)에 낀 곰팡이를 솔로 계속 닦아내서 20일 후이면 장 재료가 된다.

장 재료를 큰 항아리 않에 넣고 소금, 물과 조미료를 넣어 장 재료가 연하게 되도록 담그어 놓으며, 정기적으로 공구로 아랫 위로 젓어 놓아 다시 발효되도록 한다. 삼복기간이 지난 후에 된장이 만들어지는데 이는 유명한 복장(伏醬)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좋은 장으로 만들어낸 육필거의 장아찌의 맛은 당연히 맛있기 마련이다.

노인들의 말에 의하면 육필거의 오래된 편액이 하마터면 큰 불에 탈 뻔했다고 한다. 1900년에 경자사변이 일어난 해에 의화단이 큰 불을 지른 바람에 육필거도 불에 탔는데, 장씨라는 사람이 앞장에 서서 불속에 뛰어들어가 편액을 불속에서 꺼내온 후 산서성 임분(臨汾)회관에 보관하였으며, 육필거를 복원한 후에야 다시 걸어 놓았다. 육필거의 지배인은 이 친구가 큰 공을 세웠다고 생각해서 그를 팀장으로 승급시켰다.

문화대혁명 기간에는 ‘사구 타파’(破四舊; 구습속·구사상·구관습·구문화 타파 운동) 운동으로 편액을 떼어내었고 육필거 이름도 선무(宣武) 장아찌 공장 판매부로 변경되었다. 1972년에 중국을 방문한 다나카 일본 수상이 주은래 총리에게 북경 육필거가 아직도 있는가고 물어보았다. 주은래 총리는 있다고 긍정적으로 대답하였다. 그 후 주은래 총리는 이를 위해 “육필거의 원래 편액을 걸어 놓으라.”고 특별히 지시를 내렸다. 따라서 그 이튿날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상 풍파를 겪은 금자 편액이 육필거의 문미에 걸리게 되었다.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 금지 베이징관광국 한글공식사이트     최종수정일: 2012-01-30   

> 류비쥐 위치 및 교통정보

류비쥐(老北京的 六必居 육필거) 위치정보를 로딩중입니다.
류비쥐(老北京的 六必居 육필거) : 경도(_X)39.895847 - 위도(_Y)116.397676
  • 주소: 北京市 宣武区 前门外粮食店街3号
  • 교통정보:

> 주변 정보 (약 2 km부근 : 거리순 ) 거리는 지도상의 직선거리이므로 실제 이동거리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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