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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타이란 (景泰蓝,경태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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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타이란(景泰蓝,jǐng tài lán,경태람) 소개

경태람(景泰蓝,jǐng tài lán,징타이란,铜胎掐丝珐琅)은 자기와 동(瓷铜)이 결합된 중국의 특수한 공예품 중의 하나로서 북경은 경태람의 발원지이다.

그 제작과정을 보면 적동(紫銅)으로  먼저 형태를 만든 후, 그 위에 무늬나 밑그림 그려넣는다,  밑그림을 따라 동사(铜丝)로 각종 꽃무늬를 붙여넣는다. 그 후  채색작업과 법랑 유약을 바르고 여러차레 굽기를 반복하면 완성이 된다. 완성된 경태람을 잘 닦아내면 그 독특한 광택을 지니게 된다. 

 

경태람의 제작과정을 보면 청동과 자기공예, 전통수공예 화법과 조각기술이 결합된 중국 전통공예의 집대성이라 할 만 하다.

이런 공법은 명나라 경태년(明代景泰年间)에서 시작하였고 또한 초창기에는 남색(蓝色)만 있었다고 하여 경태람(景泰蓝)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현재 비록 각양각색을 구비하고 있기는 하나 이전의 이름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왜냐 하면 경태람이 이제는 색상 명칭인 것이 아니라 한 가지 공예기술의 이름으로 이미 변하였기 때문이다.

최초의 경태람은 대부분 고대의 청동기 그릇을 모조한 금속공예품으로 특히 명나라 선덕 연간에 생산한 것이 가장 정교하다. 명나라 경태 연간 즉 1450년부터 1456년 사이에 공예가들은 짙은 남색의 유약 재료를 찾았으며, 이런 재료의 제작 공예품은 장중하고 화려하고 묵직하고 대범하다고 하여 경태람이라고 불렀다.

그 후에 착색 면에 중대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였으나 동질 재료 면에서는 오히려 진전이 빨라 청나라 건륭 연간에 연장성이 더욱 좋은 순수한 동질을 원료로 삼아 경태람의 공예기술이 전성기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 제법은 동기 표면에 각종 색상의 법랑질로 꽃 무늬 칠을 하고 꽃 무늬의 주위에는 동사 또는 금∙은사를 박아넣었으며, 다시 불의 높은 온도로 구워서 만들어냈다. 

 

일설에 의하면, 경태는 선덕의 아들이었으며 선덕 황제는 동기 및 동질을 상당히 중요시하였는 바, 유년시기에 너무 들어서 아주 익숙해졌고 이에 대한 진취심이 많았다고 한다. 주조와 제련 면에 선덕은 이미 최고봉에 도달하였기 때문에 경태는 다시 돌파구를 찾을 능력이 없었고 색상 면에서 다른 방도를 모색하여 출기제승하였다. 그래서 끝내 경태람을 창제할 수가 있게 되었다.

왜냐 하면 사전부터 심혈을 기울려 색상을 연구하였기 때문에 성공한 후에도 너무 총애하여 모든 어용 실내 장식품은 경태람의 걸작을 사용하였으며, 종류가 부지기수여서 도자기 원료로 무슨 기물이나 만들 수 있었으며, 성화(成化)시기에는 유업을 계승하여 유풍을 고치지 않고 여전히 가마에 넣어 구웠다. 그러므로 경태람의 기물은 경태와 성화 두 시기에 가장 흔히 볼 수 있었다. 그 후 홍치, 정덕, 가정, 융경 4개 시기에 비록 가마에 넣어 굽기는 했으나 이전의 공법 대로 형식적으로 대강대강 해서 품질 면에 경태와 성화 연간 때에 비해 아름다움을 비길 수가 없었다.

만력시기 이후 비록 가끔 가마에 굽기는 했으나 이전처럼 공장을 세우는 사례가 적어 출하품이 극히 적었다. 따라서 명나라 때에는 부흥하지 못하였다. 청나라 건륭시기에 들어와서 또 가마에 굽기 시작하였고 품종이 다양해지고 실적이 많았으며, 경태나 성화 때와 비기지는 못하지만 홍정 이후에 비해서는 출하품이 더 많았다.

지금에 와서 발견된 강희와 옹정 황제의 기물을 세심히 고찰해보면 건륭황제 때의 기물과 다른 바가 없으며, 실제로는 건륭황제 때에 만들었으나 강희와 옹정의 연도를 새겨놓았기도 했으며 기실은 강희와 옹정 황제가 제조한 것이 아닌 것이다.

 

대체적으로 명나라의 경태람은 배의 동질이 비교적 좋고 대부분 자동(紫銅) 배이며, 무게가 좀 무겁고 조형상 고대의 것을 많이 모조하였다. 또한 주로 청동기에서 사용하는 유약을 모조하였으나 모두 천연적인 광물질 재료이고 색상이 짙고 진짜와 같으며 보석홍 같이 붉고 송석 같이 푸르다. 그 때의 생사는 비교적 굵고 도금부분도 두터웠다. 유약에는 대부분 기포가 있었다. 음각한 글자로는 “대명경태연제” 또는 “경태연제”가 있었고 밑이나 옆에 모두 음각하였다.

청나라의 경태람 공예기술은 명나라에 비해 제고되었고 배가 얇고 생사가 가늘고 유약도 명나라 때보다 산뜻하였으며, 기포가 없었고 꽃무늬 도안이 복잡하고 다양하였으나 명나라 문양만큼 생동적이지 못하였으며, 도금부분이 비교적 얇았으나 금색이 아주 아름다웠다.

민국시기에 경태람의 전반 수준은 청나라에 미치지 못하였고 배가 얇고 유약이 산뜻하였으나 부감(浮感)이 났고 공법이 비교적 데면데면하였다. 이때에는 단지 “노천리(老天利)”, “덕흥성(德興成)” 만 있었고 제작한 경태람의 공법이 세심하고 품질이 좋았다. 조형은 고대 청동기를 대부분 모조하거나 건륭시기의 정품을 모조하였으며 이미 음각하였다. 현재 경태람의 실내 장식품의 많으며 실용품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

현재의 경태람의 공예기술을 대폭 제고되었고 조형이 다양하고 무늬 종류가 복잡하여 중국이 국제 인사와 친구들과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최고의 예품이 되었다.


경태람은 자기와 동기를 결합한 독특한 공예품이다. 경태람을 만들려면 우선 자동(紫銅)으로 배를 만든 후 공예사들이 그 위에다 그림을 그리고 다시 동사로 배에 도안 무늬를 붙인다. 그 다음 색상이 다른 법랑 유약을 도안에 박아 넣는다. 마지막으로 다시 반복적으로 가마에 구운 후 도금부분을 반짝반짝 하게 윤을 내서 만든다. 경태람의 제작은 청동과 자기의 공예기술을 운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수공예 회화와 조각 기법을 활용하였으며, 따라서 중국의 전통적인 공예기술의 집대성자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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