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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베이커우 (古北口古长城,고북구고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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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베이커우(古北口古长城,gǔ běi kǒu gǔ cháng chéng,고북구고장성) 소개

 미윈현(密云县, 밀운현)과 허베이성(河北省, 하북성)의 롼핑현(滦平县, 란평현)구베이커우는 베이징 북쪽 약 12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으며, 만리장성의 중요 관문이자 베이징에서 네이멍구(内蒙古, 내몽고)대초원으로 가는데 거쳐야 할 필수적 교통 요충지이다. 주위 환경으로는 뒷쪽으로 판룽(盘龙, 반룡), 워후(卧虎, 와호) 2개 산에 기대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칭펑(青风, 청풍), 뎨추이(叠翠, 첩취) 2개 봉우리와 접해 있는 데다가 차오허(潮河, 조하)가 관을 통과하면서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고 있다.

망루는 산봉우리상에 우뚝 솟아 있으며, 장성은 차오허를 지나고 있어 마치 하나의 연결고리가 2개의 산을 긴밀하게 연결시키고 있는 듯하다. 장성 아래로는 3개의 수문이 차오허를 가로지르고 있는데 이러한 구베이커우관성 및 수문은 이 곳 장성의 최대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전체 길이 15킬로미터의 판룽산(蟠龙山, 반룡산)장성은 84개의 망루가 밀집되어 분포되어 있으며, ‘장쥔러우(将军楼, 장군루)’와 ‘24옌러우(眼楼, 안루)’는 이 구간 장성 건축물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구베이커우는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군사 및 교통 방면에서 있어서 중요한 요충지였다. 이미 관문의 서남쪽에 워후산(卧虎山, 와호산)이 ‘후베이커우(虎北口, 호북구)’로 불려왔으며, 당나라 시절에는 ‘후바이커우(虎白口, 호백구)’로 불리기도 했다. 동군(东军)과 베이커우(北口) 2개 군대를 이 곳에 두어 방어케 했는데 오대[五代, 후량(後梁), 후당(後唐), 후진(後晉), 후한(後漢), 후주(後周) 등을 가리킴]에는 수많은 전쟁이 일어났던 전쟁터로, 송조 때는 사신이 요나라로 가기 위해 필히 거쳐가야 하는 곳으로 유명했다. 금조 때는 류워링(留斡岭, 류알령)으로 불렸으며, 정우(贞祐) 2년(1214)에는 철문으로 된 관문을 지었으며, 원조에는 다더우[大都, 대도(지금의 베이징)]에서 상더우[上都, 상도(지금의 내몽고)]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할 필수 관문이었다. 명나라 초기에는 이 곳에 쳰후쒀(千户所, 천후소)를 지었다가 이후 구베이커우루(古北口路, 고북구로)로 승격되어 15개 관문은 관할하며 엄중히 지켰다.

구베이커우 일대는 북제(北齐) 천보(天保)연간(550~559년)에 장성을 보수했으며, 이는 북제 정권이 다퉁(大同)시 부근에서부터 보하이(渤海)까지 지은 1,500킬로미터 길이의 장성 구간 중 일부이다. 그렇지만 당시 장성 공사 과정은 빈약해 벽은 황토를 달구질해서 쌓았기 때문에 긴 시간 바람과 비를 맞으면서 많이 훼손되어 당시의 원형을 찾아보긴 힘들다. 따라서 우리가 현재 볼 수 있는 구베이커우장성 대부분은 명나라 시절 수리 및 복구 작업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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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베이커우성 북쪽과 동쪽에는 판룽산이, 서쪽에는 워후산이 있어 험준한 산세와 우뚝 솟은 산봉우리를 자랑하며, 양쪽 산 가운데로는 자오허가 아주 좁게 흘러가고 있는데 자오허 연안으로는 겨우 1대의 차가 통과할 수 있는 도로가 있다. 금나라 때는 이 곳에 철문을 지어 이를 방어함으로 ‘철문관(铁门关)’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구베이커우관으로 불리기도 했다. 청나라 시대에는 구베이커우허시촌(古北口河西村, 고북구하서촌)에 류린잉(柳林营, 류림영)을 추가로 지었으며, 제독부(提督府)를 지어 어로(御道)를 개척하고 행궁을 보수해 병력을 주둔시켜 관문을 지켰다.

높이 10미터, 주위의 각각 너비가 10.1미터인 장쥔러우는 2층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동서에 각각 3개의 사격창, 남북에 각각 4개의 사격창이 있으며 동서남북으로 각각 문 1개가 있다. 이 건물은 이미 항일전쟁 당시 맹렬한 폭격을 받았지만 현재까지 여전히 견고함을 자랑하고 있다. 지붕에 있는 타구(垛口)는 당시의 폭격으로 인해 완전히 훼손되었지만 가운데 있는 직경 1미터의 구멍을 제외하고는 다른 원형구멍은 옥외로 노출되어 있다.
장성에서 항일전쟁했을 당시 가장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 바로 장쥔러우이다.

이십사옌러우 역시 구베이커우 장성 구간의 끝부분으로 매우 독특한 형태의 망루이다. 서북부 건축물은 이미 허물어져 없어졌으며, 동쪽과 서남쪽을 향해 있는 벽이 아직까지 견고하게 세워져 있다. 원래 사면에 24개의 사격할 수 있는 창이 있다하여 유명해진 이십사옌러우는 동쪽으로는 진산링(金山岭, 금산령)과 접해 있고, 서쪽으로는 워후산(卧虎山, 와호산)이 보이는 등 지세가 높은 곳에 위치해 있으며, 전략적 위치의 중요성 때문에 특별히 높고 크게 지어 그 독특함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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